인문학을 통해 본 시간관리 :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개념과 시간관리 (1) 시간의 개념과 성찰 > SLP Insight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Archive

인문학을 통해 본 시간관리 :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개념과 시간관리 (1) 시간의 개념과 성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3-04-03 19:16 조회 283회 댓글 0건

본문

c232766f452f0ba61b35d5ff31207811_1680517166_8199.jpg
 

강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시간관리를 주제로 강의의뢰가 왔다. 그런데 당시는 강사생활 초기인지라 일단 강의가 주어지면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하는 시기였지만, 나는 도무지 그 강의를 할 수 없다고 거부했다. 가장 큰 이유는 나 스스로 시간관리를 정말 못한다고 생각하는데 잘하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강의를 한다는 건 양심상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강의를 의뢰하는 분은 당시 다른 사람 강의를 얻어서라도 해 줘야 한다고 간곡하게 부탁하셨다. 내가 강의를 잘해서는 아니고 처음의 계획이 어긋나서 누구라도 당장 대체를 해야 했기 때문으로 기억한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정말 못하는 시간관리를 강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고 말았다.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일단 강의를 해야 했기에 나는 선배 강사님의 시간관리 강의안을 하나 받아 봤다. 하지만, 도움을 주신 선배 강사님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강의 내용이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던 내용이었고, 도무지 그 내용으로는 강의를 할 수 없다는 생각했다. 일단 내가 그 내용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그 내용이 이 마음에 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당시에 내가 접해본 시간관리는 ‘소중한 것 먼저하기’라는 말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었다. 시간은 한번 흘러가면 다시 오지 않기 때문에 게으름피지 말고 시급성과 중요성의 기준 속에 중요한 것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을 하고 난 나머지 시간도 잘 계획해서 빈틈없이 써야 시간관리를 잘한다는 게 시간관리 강의의 주요 내용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시간관리가 도무지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우선 내가 그렇게 시간을 빈틈없이 알차게 관리하는 사람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지식노동자에게 투입한 시간만큼의 성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을 목적어로 삼아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도 와닿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을 잘 써야 한다는 것 자체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었지만 성공을 위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시간을 쪼개서 빈틈없이 써야만 한다는 게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기존의 시간관리에 대한 강의는 도무지 마음에 와닿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시간관리 강의를 준비해야 했다. 정말 납덩이를 가슴 위에 올려 놓은 것처럼 힘들었다. 나는 ‘시간을’ ‘관리한다’는 게 아직 이해가 안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답답했다.

그렇게 얼마간 고민하다가 문득 스티븐 코비와 같은 처세술이나 성공학 관련 사람들 말고 시간에 대해 이야기했던 다른 관점을 살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하이데거가 떠 올랐지만 내 수준에 그는 접근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일단 접고 다시 생각을 해 봤다. 그리고 그 당시로부터 약 10년 전에 신학교에서 공부했던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의 시간론이 떠 올랐다. 정말 재미있게 했던 공부였는데 그걸 잊고 있었다는 게 속상하면서도 다시 떠 올린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름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그의 고백록을 다시 찾아 읽고, 선한용 교수님의 [시간과 영원]을 다시 읽으면서 시간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되새겼고, 그것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시간관리에 대한 강의안을 구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철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지만 내가 이해한 수준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시간을 관리한다는 것에 대해 일차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을 것이라고 본다.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때,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으로 존재하지 않고, 현재는 존재한다고 지각하는 순간 사라지며, 미래는 아직 도래하지 않았기에 관리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점을 그도 지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럼에도 우리는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일의 현재’, ‘현재 일의 현재’, 그리고 ‘미래 일의 현재’로서 우리의 영혼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시간이 과거, 현재, 미래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영혼 속에 존재하는 데 그것은 과거 일의 현재인 ‘기억’으로서, 현재 일의 현재는 ‘직관’으로서 그리고 미래 일의 현재는 ‘기대’로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기억과 직관 그리고 기대로서 현재 우리의 영혼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의 관점에서 시간관리를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 강의를 위한 몇 가지 주제를 잡을 수 있었다.

우선, 미래가 미래 일의 현재인 기대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뒤집어 보면 결국 ‘기대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주제를 제시할 수 있었다.

물론, 누구에게나 미래는 온다. 당장 오늘 오후도 올 것이고 내일도 올 것이다. 그렇게 미래는 올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폴 틸리히에게 배운 시간의 2가지 개념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개념을 활용하여 주제를 구체화해 나갔다. 위대한 신학자였던 틸리히의 [19-20세기 프로테스탄트사상사]에서 나는 시간에는 量적 개념으로서 크로노스와 달리 質적 개념으로서 카이로스가 있음을 배웠다. 즉 시간은 양적으로 2시간, 3시간과 같이 측정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사랑하는 이와의 1시간이 1분처럼 여겨지는 것처럼, 아우구스티누스가 영원을 무한히 긴 시간이 아니라 신과 만나는 초월적 개념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시간에는 질적인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적인 시간의 관점에서 기대하지 않는 자에게는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양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미래가 오겠지만 기대하지 않는 이에게 오늘을 어제의 연장이며, 미래는 오늘같은 내일일 뿐이지만, 기대하는 이에게는 오늘이 기대를 향해 가는 희망의 순간으로 새롭게 다가올 수 있기에 시간을 관리하려는 이는 내가 무엇을 기대할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사실, 여기에는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이 조금 들어가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론으로부터 도출한 시간관리 강의의 또 다른 주제는 시간관리에서 현재의 시간을 알차게 쓰는 게 중요하지만, 이는 결국 미래에 내가 무엇을 기대하는가와 관련되며, 나의 기대는 나의 가치관과 관련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즉 보통 시간관리에서 80세를 기준으로 평균 8년이나 TV를 보면서 허비하는 건 너무 아깝다는 식의 접근을 하지만, 이러한 판단을 하기 전에 먼저 나의 기대가 무엇이며, 그러한 기대를 정당한 것으로 판단하는 나의 가치관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만약 드라마 작가를 기대한다면 8년의 TV 시청 시간은 너무도 부족한 시간일수도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시간관리 강의가 일부 처세학 강사나 자본가가 말하는 것처럼 현재의 자기개발을 통해 자본의 이익에 충실한 인간이 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것을 의심해 보고 나의 기대는 어디에 있는 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요청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개념에서 끌어낸 시간관리 강의의 주제는 시간관리가 미래와 현재에 한정되어서는 안되며, 기억으로 존재하는 과거의 시간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시간관리는 현재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문제이겠지만 동시에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에 대한 관리라는 점에서 과거의 시간을 관리하는 것은 제대로 시간을 관리하기 위한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기억으로 존재하는 과거의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 나는 시간관리의 중요한 주제는 ‘성찰(省察)’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시간은 기억으로 현재의 나를 구성하고 가끔은 현재의 나를 지배하기도 한다.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이나 혹은 과거의 성공으로부터 미래도 그 공식을 고수하려는 성향은 기업이나 우리가 모두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임을 말해 준다. 경영학에서 이야기하는 조직의 관성(inertia)이나 성공의 덫(success trap) 혹은 이카루스 패러독스(Icarus paradox) 등은 모두 과거의 기억이 현재를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는가? 따라서 기억으로 존재하는 과거의 시간을 관리하는 것은 시간관리의 중요한 이슈이며, 이를 위해 나는 과거의 기억을 되돌아보는 ‘성찰’이 시간관리의 중요한 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기억 속에 드러나는 나의 생각과 행동을 되돌아 봄으로써 나의 현재를 직시하게 되고 이를 통해 나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시작점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성찰은 기억으로 존재하는 나의 시간을 관리하기 위한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다.

“그 행위를 보고(視其所以) 행위의 동기를 따져 보며(觀其所由), 그 편안히 여기는 바를 살핀다면(察其所安) 사람이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사람이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人焉廋哉, 人焉廋哉)‘ 논어 위정(爲政)편의 이 문장으로 나는 성찰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시간관리 강의의 구성을 마칠 수 있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 문장을 통해 성찰의 의미를 어떻게 구성했는지 설명해 보고자 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LP Partners | 대표자 : 이성일 | 사업자번호 : 578-81-02330
주소 :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청명로21번길 19, 606호
대표 이메일 : slppartners@naver.com
Copyright © SLP Partners. All rights reserved.